시간의 유한함


1.
어린 시절 나는 시계의 시침이 볼 때마다 바뀌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었다. 잠깐 시계를 보았을 때는 초침과 분침이 움직이는 것은 볼 수 있었지만 시침이 움직이는 것은 도무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심을 먹고나면 12시가 1시가 되어있고, 밖에서 놀다 오면 2시가 5시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믿기 힘들었다. 한 번은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어느 식당 앞의 시계를 5분동안 쳐다본 적이 있다. 시침이 미세하게 움직인 것을 확인한 나는 그 이후에야 시계가 정말로 돌고 있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있었다. 보는 순간에는 인식할 수 없어도 시간은 흐른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.

2.
대부분의 사람들은 시험공부에 대한 집중력이 시험 시간에 다가옴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. 이러한 몰입은 시험 일주일 전에는 절대로 발휘될 수 없다. 우리는 하루 뒤의 시험은 온 몸으로 체감할 수 있어도 일주일 뒤의 시험에는 무감각하기 때문이다. 
인간이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순간은 시간의 유한함을 인식할 때인 듯 하다.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놓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때, 우리는 머릿속의 계획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기 때문이다. 반면 오늘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 계획은 잊혀진다. 우리가 많은 시간을 그냥저냥 보내게 되는 이유다.

3.
긴 시간을 '무한'하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. 1년 뒤의 일은 적당히 멀게, 10년 뒤의 일은 아주 까마득하게 느껴진다. 말할 것도 없이 죽음은 영원히 다가오지 않을 것 처럼 생각된다.  시간에 대한 감각이 이렇다 보니 머릿 속에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떠오르는 경우는 적다.  그리하여 시간이 지나다보면 나의 색깔은 희미해지고, 나와 남을 구분짓는 특징이 불분명해지고,  내가 내세울 수 있는 스토리는 도무지 쌓이지 않는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긴장감과 조급함은 아직 없을 수 있다. 나는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.

4.
유한한 수명에 대한 인식은 삶의 태도와 직결되는 듯 하다.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기 때문에 지금 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.  몰입과 집중은 대부분 '그래야만 하는 이유'가 있을 때 생겨난다. 그래서 어쩌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유는 수명의 유한함 그 자체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.

Comments